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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십 분짜리 영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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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남자 2020. 8. 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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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중반정도 읽어가는 동안 머리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일 마리아치>를 빨리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갈증이었다. DVD를 구입하려 쇼핑몰을 살펴보았지만 "품절",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나는 황학동에 알고 있는 샵에 전화를 걸어 일 마리아치를 구할 수 있냐고 물었다. 여자 점원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기다리라고 했다. 지금 내가 달려갈테니......

 

2시간만에 달려가 <일 마리아치>를 내놓으라고 했더니 죄송하지만 직원의 착오로 현재 구할 수 없다는 주인의 대답을 들었다. 그 순간 버틸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 먼거리를 달려왔는데 그것도 확인 전화만 철썩같이 믿고 온 사람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용서가 될 줄 알았냐.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아쉬워 <일 마리아치>를 대신할 몇편의 영화를 사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로드리게즈의 책에는 그가 7000달러의 돈으로 첫 16mm 장편 영화 <일 마리아치>를 제작했던 일화를 털어놓은 작업 일지가 담겨있다. 의약품 회사의 마루타가 되어 모은 돈으로 혼자서 제작,시나리오,촬영,연출,편집까지 맡아서 만든 영화는 애초에는 중남미의 비디오 시장에 내다팔 목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헐리웃과 로드리게즈를 헐리웃에 입성시키는 전대미문의 화제작이 될 줄은 로드리게즈 자신도 예상치 못했다.

 

그 이후로 로드리게즈가 <일 마리아치>는 영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그의 영화와 그가 쓴 책은 비록 대중적으로는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일단 사연을 알게되면 반드시 접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보아라. 책을 읽다 <일 마리아치>를 구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나같은 사람이 있다는게 하나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로드리게즈가 말했듯이 그의 영화가 언제까지나 비디오가게의 책장 어딘가에 살아 숨시며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찾아질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는 그 말에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쨋든 나는 <일 마리아치>를 보았다. 나 또한 본다면 어떻게해서든지 구해서 보는 근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일 마리아치>는 완성도보다는 정말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터무니없는 적은 돈으로 혼자서 이 영화를 제작한다는 사실을 염두해두고 이 영화를 본다면 "대단해" 이 말이 먼저 튀어 나온다.

 

그 대단한 사연을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십 분짜리 영화학교>에 담긴 내용이다. 그가 영화를 찍고 싶어하는 이유, 영화 학교에 들어가서 느낀 소감, 왜 16mm 장편을 찍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일 마리아치>의 프리프로덕션, 제작 과정, 후반 작업, 그리고 그 이후 영화가 어떤식으로 날개를 달아가는지에 대한 일화가 차례로 소개된다.

 

실질적인 로드리게즈의 십 분짜리 영화 수업은 책에 마지막 부분에 극히 작은 부분에 소개된다. 영화를 찍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은 일주일이면 충분히 마스터 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되어, 정말로 영화 감독이 되고 싶으면 당장 카메라를 들고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을 통해 배우라는 것이다. 영화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아무 쓸모없는 수업에 아까운 돈을 허비하지 말고 그 돈으로 필름을 사고 영화를 찍으라는 것이 그의 영화 수업의 전부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동감했던 부분은 대부분의 자신의 첫 단편 영화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유치하고 허술하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실패감에 누군가는 의지를 잃고 자신은 영화에 소질이 없다하며 이 바닥에서 손을 떼곤한다. 로드리게즈는 자신도 첫 단편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단편 영화를 찍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쓰레기 같은 시나리오와 작품들을 쏟아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시행 착오를 거치다보면 결국에는 자신이 봐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판은 정말 거칠고 쉽게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독선적이고 자신의 세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단지 그들의 꿈만을 믿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한다. 당신의 영화가 극장에 걸려 감동이나 재미등으로  관객의 기억에 카운트 펀치를 날리지 못한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지금까지 당신이 걸어온 길은 인정받지도 동정조차 없는 아주 위험한 도박인 것이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그 위험한 도박을 단지 "꿈"이라는 카드패 하나로 모든 것을 올인하는 영화인들에게 로드리게즈와 <일 마리아치>의 신화는 잠시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 로드리게즈가 <일 마리아치>를 가지고 배급업자들을 만날때마다 자신을 소개하면서 <수세미머리>라는 단편 영화를 자주 자랑하곤 했다. 수많은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을 거머쥔 이 작품은 책을 읽다보면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다행히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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